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[[니벨 공세]] 당시 작전계획에 국왕이 간섭할까봐 작전 내용을 철저히 국왕 앞에서 함구할 것을 내각 구성원들에게 요구했었다. 뒤늦게 이 사실을 안 [[조지 5세]]는 꽤나 삐졌었다고(...) * [[로마노프 왕조]]의 무능력에 질렸던 탓에 [[러시아 혁명]]이 발발했을 당시 은근히 [[니콜라이 2세]]의 폐위를 반겼다고 한다. 게다가 로마노프 왕조가 영국으로 망명하려는 것을 은연 중에 반대했던 탓에, 니콜라이 2세 일가는 결국 공산정권에 의해 집단 처형됐고 이로 인해서 비판받기도 했다.[* 사실 로이드 조지 뿐만 아니라 다른 각료들도 니콜라이 2세의 망명을 반대했다. 그 이유는 니콜라이 2세의 아내인 [[헤센의 알릭스|알렉산드라 황후]]가 독일의 헤센 대공국 출신인데, 당시 영국은 [[제1차 세계 대전|독일과 전쟁 중이여서]] 자칫하면 왕실폐지론이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.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로 애초에 공주를 독일에 시집보낸 것은 영국이고, 로마노프 왕조가 막장이 된 것에는 바로 빅토리아 여왕의 혈우병 유전자가 큰 몫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...] * 아랍 쪽에서는 상당히 취급이 나쁘다. 바로 [[이스라엘|팔레스타인 내 유대인들의 국가]] 건설을 약조한 밸푸어 선언이 그가 총리일 때 진행됐기 때문. 반대로 [[폴란드]]를 비롯한 동유럽 쪽에서는 그가 윌슨이 제창한 [[민족자결주의]]를 적극 지지하면서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꽤나 좋은 평가를 받는 모양. 그러나 정작 로이드 조지는 [[폴란드 제2공화국|신생 폴란드]]가 서쪽으로 팽창하던 [[볼셰비키]]와 [[소비에트-폴란드 전쟁|전쟁]]을 벌이게 되자 '성가신 얼라들(children who gave trouble)'이라고 씹기도 했었다. * [[나치당]]에 대단히 우호적이었다. 1936년에는 직접 히틀러의 별장이 있는 베르히스가르텐을 방문해 [[히틀러]]를 만나보기도 했다. 그가 히틀러에 대하여 내린 평가는 '''대단히 신뢰가 가며 통찰력이 있는 지도자.'''[*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이외에도 많은 당시 정치인들이 히틀러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. 물론 [[제2차 세계대전|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만]]...] [[프랑스 침공]] 직후 영국이 고립무원의 상황이 됐을 때는 독일과의 강화를 주장했다가 총리 [[윈스턴 처칠]]에게 '[[필리프 페탱|페탱]]같은 노친네'라고 까인 바 있다.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히틀러는 본심을 숨기고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합리적인 정치인으로 자신을 포장하는데 능했기 때문에, 히틀러를 만나고 속아넘어간 외국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. * 위에서 설명했듯이 '데이비드'가 이름이고 '로이드 조지'가 성씨이다. 그런데 2019년 7월 10일자 [[모의고사]]의 세계사 영역에서는 '로이드 조지'라고 나와서 모르는 학생들의 오해를 사게 되었다. [[윈스턴 처칠]]처럼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... 사실 세계사 교과서에는 사건 당시의 모든 지도자를 밝히지 않고 '어느나라 정부가 이러이러했다'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들이 보기에 살짝 아쉬울 수도 있다.[* 해당 문제는 [[파리 강화 회의]]에 관련된 문제인데, 미국의 [[우드로 윌슨]] 대통령과 프랑스의 [[조르주 클레망소]] 총리는 이름이 다 나오는데,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만 이름이 안 나오고 성의 일부인 '로이드'가 이름처럼 나왔다. 여담으로 해당 문제에서 윌슨 대통령은 [[국제연맹]]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, 클레망소 총리는 (가)은/는 알자스 로렌 지방에 대한 모든 이익과 권리를 지체없이 프랑스에 반환해야 한다고 했고, 로이드 조지 총리는 (가)은/는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, 여기서 말하는 (가)의 정체는 다름아닌 [[독일 제국]].] * 로이드 총리가 사임하고 나서 앤드루 총리로 넘어 갈때 4일정도 영국은 총리없이 있어야 했다. * [[파리 강화 회의]] 당시 혼잣말을 한 것을 당시 회의에 참석한 '[[아놀드 토인비]]'[*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파리 강화 회의 당시 영국 외무부 대표단으로 참석]가 듣게 되었다는데, 그 내용이 가관이다... >"[[메소포타미아]]... 음... 그래... [[석유]]... [[관개]]... [[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|메소포타미아는 우리가 차지해야해]]; [[팔레스타인]]... 그래... 거룩한 땅... [[시오니즘]]... [[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|팔레스타인도 우리가 차지해야해]]; [[시리아]]... 흠... 거기엔 뭐가 있지? [[시리아-레바논|프랑스 놈들이나 가지라고 하지]]..." >"Mesopotamia...yes...oil...irrigation...we must have Mesopotamia; Palestine...yes...the Holy Land...Zionism...we must have Palestine; Syria...h'm...what's there in Syria? Let the French have that." [[파일:AKR20190824055800371_11_i_P2.jpg]] '[[아일랜드|애란(愛蘭)]]과 [[영국 총리|영(英) 수상(首相)]]' '''1920년 5월 31일자''' 동아일보 만평 한국 언론에 캐리커처가 실린적이 있다. [[아일랜드 자유국]] 수립 직전 벌어진 독립전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